적정기술 개발의 차별적 해법을 '지식재산'에서 찾아야
한국발명진흥회 국제협력실장 김운선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약 200km 떨어진 아나오 지역은 '일랑일랑'나무가 널리 자생하는 지역이다. 일랑일랑은 꽃 중의 꽃을 의미하는 말레이시아어로 일랑일랑 나무에서 추출한 오일은 화장품, 향수, 비누 등의 원료로 활용되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생계를 돕는 효자 상품이다. 하지만 일랑일랑 오일을 추출해 오던 오일추출기가 노후화되면서 생산량이 현격히 떨어져 지역 주민들이 생계난을 겪게 되었다. 2013년 한국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오일추출기가 새롭게 보급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소득과 일자리가 늘어났다.
북위 47도의 내륙에 위치한 몽골은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11월부터 3월까지의 평균 기온이 영하 30도로 겨울이 매우 혹독한 나라다. 추운 날씨와 척박한 땅으로 인해 겨울철 채소와 과일 재배가 어려워 온실재배를 시도하고 있지만 낮은 기술력으로 실효성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2018년 한국의 스마트 겨울온실이 몽골 날라이크 지역에 보급된 후, 해당 지역의 겨울철 채소 생산량이 증가하고 농가 소득 또한 늘어나게 되었다.
위 사례들은 지식재산을 활용한 '적정기술' 개발 사례들 중 하나이다. 한국발명진흥회는 특허청과 함께 2012년부터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지식재산을 활용한 적정기술 개발을 지원해 오고 있다. 2020년까지 적정기술 개발은 14개국 26건, 브랜드 개발은 12개국 22건을 지원하고 있다. 지식재산을 활용한 적정기술 개발은 개발도상국 지역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하여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기여함은 물론, 우리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1965년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가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는 개념으로 처음 소개하였다. 적정기술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변화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적정기술은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구현 가능한 기술을 말한다. 적정기술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즉, 적은 비용으로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현지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해당 기술을 이해하고 쉽게 활용하며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들어 적정기술은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를 위한 경제적 지원에만 그치지 않고 개발도상국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기술지원 및 인재육성 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 등 다양한 분야로 지원 영역이 확장되고 있어 적정기술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 나라가 재건되는데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다." 한국전쟁 후, UN군 최고 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의 아픔을 빠르게 이겨내고 1996년 12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하였으며, 2009년에는 OECD 회원국 중 선진국만이 가입할 수 있다는 '경제개발협력기구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최초로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지위가 바뀐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식재산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식재산 5대 강국(IP5) 중 하나로 전 세계 지식재산제도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으며, 지식재산의 기준과 방향 설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우리나라는 특허를 포함한 산업재산권 출원이 50만 건을 넘어 일본,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4번째의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에 지속가능한 개발과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으로 대변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선진국의 기술 개발과 지식재산 선점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지식재산 격차(IP-Divide)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지위에서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견인과 지식재산 격차를 해소하고, 개발도상국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적정기술 개발의 차별적 해법을 '지식재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