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기술 강국의 초석:
지식재산 가치,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글:전우정 (KAIST 부교수)
1억 원대 28억 원, 혁신의 가치가 저울질 되는 현실
지식재산(IP), 즉 혁신의 결과물에 대한 가치가 법적 분쟁의 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문제는 단순한 법률적 논쟁을 넘어, 국가의 미래 혁신 동력과 직결된 중차대한 과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특허 침해 소송에서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배상액이다. 특허청의 연구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특허 침해 소송에서 인정된 손해배상액의 중간값은 약 1억 원에 불과했다. 이는 과거 6,000만 원 수준에서 일부 개선된 수치지만, 수년간의 연구개발(R&D) 투자와 노력의 결실인 특허의 가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수치를 세계 최대 기술 시장인 미국과 비교하면 문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미국의 컨설팅 그룹 마컴(Marcum)이 2024년에 발표한 최신 특허 소송 연구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연방지방법원에서 인정된 특허 침해 손해배상액의 중간값은 약 240만 달러에 달했다.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약 28억 원에서 30억 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단순 비교로도 약 28배의 격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현격한 차이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동일한 유형의 기술 혁신이 법정이라는 가치 평가의 장에서 이토록 다른 대우를 받는가? 이는 단순히 양국의 경제 규모 차이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배상액이 가치를 결정한다: 특허 손해배상의 경제학
특허 침해에 대한 법원의 손해배상액 결정은 단순히 사후적인 피해 구제 조치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유도하는 강력한 신호(Signal)로 작용하며, 지식재산 시장 전체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에 깊숙이 관여한다. 즉, 법원이 인정하는 잠재적 손해배상액이 해당 기술의 현재 시장 가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기업의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어떤 기업이 타사의 특허 기술을 사용하고자 할 때, 그 기업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인다. 첫째는 특허권자와의 협상을 통해 정식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로열티를 지불하는 것이다. 둘째는 계약 없이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추후에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 손해배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기업이라면 이 두 가지 선택지의 비용과 위험을 철저히 비교 분석한다.
만약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배상액 수준이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지불해야 할 로열티보다 현저히 낮거나 비슷하다고 예측된다면, 기업은 굳이 선제적으로 계약을 체결할 유인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기술을 먼저 무단 사용해 이익을 취하고, 문제가 생기면 소송을 통해 시간을 벌거나 낮은 배상금을 지급하는 효율적 침해(Efficient Infringement)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유리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술 거래 시장이 제대로 형성될 수 없다.
이러한 경제 논리는 특허관리전문기업(Non-Practicing Entity, "NPE")의 시장 활동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NPE는 특허를 매입하여 라이선스 수익이나 소송 배상금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이다. 이들은 특정 특허를 매입하기 전에, 해당 특허를 침해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때 예상되는 승소 가능성과 손해배상액 규모를 면밀히 추산한다. 만약 예상 배상금이 특허 매입 비용과 소송 비용을 합한 금액을 크게 상회한다고 판단될 때만 투자를 결정한다. 결국, 법원의 낮은 손해배상액은 NPE의 활동을 위축시켜 특허 유통 시장을 침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정당한 가치 산정의 열쇠: 미국 시스템의 작동 원리
미국의 특허 손해배상액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는 기술의 경제적 가치를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과학적으로 산출하고, 이를 치열한 공방을 통해 검증하는 체계적인 사법 인프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의 두 축은 바로 증거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디스커버리(Discovery) 제도와 가치의 과학적 검증을 수행하는 전문가 증인(Expert Witness) 제도다.
증거의 투명성, 디스커버리(Discovery)
미국 민사소송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디스커버리는 공판(Trial)이 시작되기 전, 소송 당사자들이 서로 관련된 모든 자료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교환하는 절차다. 특허 소송에서 특허권자는 디스커버리 절차를 통해 침해자의 판매량, 매출액, 원가, 이익률, 내부 회계장부 등 손해배상액 산정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삼성과 애플의 세기의 특허 소송에서 양측이 수백만 건에 달하는 방대한 문서를 교환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투명하게 공개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 특허가 제품의 성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료를 숨기거나 허위로 제출할 경우 법정모독죄로 강력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이 보장된다.
가치의 과학적 검증, 전문가 증인(Expert Witness)
디스커버리를 통해 확보된 방대한 데이터는 그 자체로 가치를 말해주지 않는다. 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법정에서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가공하는 역할은 각 분야의 전문가 증인들이 담당한다. 미국 민사소송에서는 원고와 피고 각 당사자가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전문가 증인(Expert Witness)으로 선임하여 법정에서 증언하게 하거나 전문가 보고서(Expert Witness Statement)를 증거로 제출한다.
손해배상액 산정에서는 경제학 또는 회계학 분야의 전문가 증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은 디스커버리에서 나온 재무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약에 특허 침해가 없었더라면 특허권자가 얻었을 이익(일실이익)' 또는 '만약에 합리적인 라이선스 계약이 합의되었더라면 지불했을 로열티(합리적 실시료)'를 경제 모델을 통해 산출한다.
이 과정의 백미는 상대방 전문가 증인과 변호인단이 수행하는 집요한 검증이다. 각 전문가 증인과 변호인단은 상대방 전문가 증인이 사용한 경제 모델의 가정, 데이터의 신뢰성, 분석 방법론의 허점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예를 들어, "미래 시장 점유율을 30%로 예측한 근거는 무엇인가?", "가치 산정에 적용한 할인율 10%는 어떤 객관적 기준에 따른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전문가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을 극한까지 검증한다. 원·피고 쌍방이 각자의 논리를 내세워 대립하며 가치를 벼려 나가는 과정이다. 이 치열한 공방을 지켜본 배심원단과 판사는 양측의 주장을 종합하여 진실에 가장 가까운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기술의 가치는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기술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투명한 증거 위에서 치열하게 충돌하고 검증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객관성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미국 시스템은 보여준다.
우리 민사소송법에도 법원이 지정하는 감정인 제도가 있지만, 이는 법원이 주도하는 중립적 감정에 가깝다. 특히 특허 또는 영업비밀 침해 손해배상액을 당사자 쌍방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정교하게 산정할 수 있는 전문가 및 기관이 많지 않다. 이러한 전문가 양성이 절실하다.
기술주권을 위한 사법 인프라를 구축할 때
대한민국은 기술로 일어선 나라이고, 기술로 미래를 열어야 하는 나라다.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자원은 인재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혁신, 즉 지식재산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도 그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보호해주는 시스템이 없다면, 혁신의 샘은 언젠가 마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무조건적인 고액 배상이나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소송이 아니다. 목표는 예측 가능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혁신가는 자신의 기술이 침해당했을 때 정당한 가치를 배상받을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기업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합리적인 선택임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예측 가능성이 시장의 신뢰를 낳고, 그 신뢰가 R&D 투자와 공정한 기술 거래의 선순환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