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업비밀과 지식재산
글:한지영 교수(조선대학교)
영업비밀과 지식재산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전 세계 국가와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반도체, 로봇 등 첨단 과학기술의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가용 가능한 모든 재원과 인력을 투입하여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술개발의 성과물에 대하여 기업들은 공개를 조건으로 한 특허를 취득할지, 아니면 비공개를 조건으로 한 영업비밀을 택할지 전략적 기로 앞에 서게 된다. 영업비밀은 부정경쟁방지법상 비공지성(비밀성), 비밀유지성(비밀관리성), 경제적 유용성을 성립요건으로 하여 비밀유지가 핵심이다. 만일 유출되면 그동안 기업이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재원과 기술은 경쟁기업이나 경쟁국가에게 넘어가 해당 기업은 치명타를 입거나 경쟁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 2024년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9~2023년) 산업기술 및 영업비밀 유출 피해는 총 589건으로, 이중 524건(89.0%)이 중소기업에서 발생하였고, 영업비밀 유출은 542건(92.0%)이었으며, 423건(71.8%)이 내부자에 의한 유출로 조사되었다. 동 기간 동안 해외로 유출된 영업비밀 건수는 총 72건이었는데, 중국 47건, 미국 8건, 대만 4건, 베트남 2건, 일본 2건으로 대부분 중국으로 유출되었다. 또한 2020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적발된 해외 기술 유출 시도는 총 97건으로, 만일 이 시도가 모두 성공하였을 경우 피해액만 23조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해외로의 기술 유출은 우리 기업의 생존에 위협을 가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에도 위험한 적신호로 작용하게 된다.
최근, 과학기술 관련 논문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네이처인덱스 순위' 기준 세계 최상위 대학 순위가 발표되었다. 2016년 세계 최상위 대학 10위권 내에 미국은 1위인 하버드 대학을 포함하여 5개, 일본 1개, 영국 2개, 스위스 1개, 중국 1개 대학이었지만, 8년 후인 2024년에는 미국 대학 2개(1위와 10위)와 중국 대학 8개(2위부터 9위)로 중국 대학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20위권으로 확대해 보면, 중국의 대학은 11개(55%)로 미국의 대학 5개(25%)보다 2배 이상 더 많다. 이는 중국의 첨단 과학기술 경쟁력이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떠한가? 2024년 기준으로 20위권에는 아예 없으며, 100위권 내 들어간 대학도 서울대(54위), KAIST(76위) 뿐이다.
중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미국과 경쟁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비도 미국과 1위, 2위를 다툴 정도로 매년 거액이 투자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영업비밀이 가장 많이 유출되고 있는 국가가 중국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중국은 첨단 과학기술 영역에서 핵심 전문인력을 해외로부터 데려오기 위하여 거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스카우트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중국의 이러한 공격에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기업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시대에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주변 국가들에 비해 국가 연구개발 예산도 상대적으로 적고 민간에서 영업비밀 유출도 심각한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가 및 민간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에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째, 영업비밀 유출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와 강력한 법 집행의 필요성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다른 회사로 이직한 전직 삼성 직원 A가 영업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법원은 A의 행위가 영업비밀 침해이고 공정한 경쟁질서 및 국내 산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일이라고 판단했지만, A를 집행유예로 감형하였다. 영업비밀 자료 유출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 자료를 제3자에게 경제적 대가를 받고 유출하였다는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시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 대가를 받고 제3자에게 유출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계속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취지의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비교법적으로 미국, 영국 등은 해외로 영업비밀을 유출한 고의범을 처벌하고 있고, 영국은 미필적 고의범까지 처벌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영업비밀 보유자에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영업비밀 유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영업비밀 유출에 대한 형사처벌을 이원적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영업비밀을 고의로 유출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경제적 대가를 받고 제3자에게 유출한 사실이 입증되면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이원화된 법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영업비밀 및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하여 관할법원을 집중하여 법원의 일관성 및 전문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영업비밀 및 산업기술 유출 사건에 대한 법원의 관할집중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므로 향후 유관 법률 개정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셋째, 근로계약에 위약벌 조항 마련 및 사내 규정의 명확화이다. 기업은 영업비밀을 취급하는 직원과 노동계약을 체결할 때 위약벌 조항을 명확하게 하고, 이를 위반하여 영업비밀을 유출하면 상당액의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해외 유출에 대해서는 가중 배상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영업비밀 자료임을 객관적으로 표시 및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영업비밀 취급에 관한 사내 규정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영업비밀 유출은 기업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므로 영업비밀 유출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과 법 집행이 필요하며, 고의로 유출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관할집중으로 인한 법원의 전문성이 제고될 수 있도록 유관 법령을 개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치열한 기술패권 시대에 기업의 생존 전략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시급하면서도 긴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