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소송에의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도입에 대한 기대
장재원(법률사무소 해화 대표변호사 / 변리사, 엔지니어, 미국공인회계사)
본문
얼마 전 합의로 종결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기술 관련 분쟁에 관한 뉴스를 한번쯤은 접하여 보셨을 것이다.1) 분쟁은 국내 기업 간의 분쟁이었음에도 추정 변호사 비용만 월 100억 원에 달하는2) 격전이 미국을 무대로 펼쳐졌다는 점 때문에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었다. 경영계와 기술계에서는 분쟁비용의 증가가 기술개발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였고, 법조계에서는 국내 법률서비스 시장의 낮은 매력도와 경쟁력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에 따른 증거수집절차의 실효성 부족 및 그에 따른 피해자의 낮은 승소율과 충분하지 못한 기대 손해배상액이라는 것으로 각계의 의견이 수렴되어3) 그 이후 소위 "한국형 증거수집제도"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한국형 증거수집제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특허법 개정안(의안번호 제2204924호; 이하 "이번 특허법 개정안"이라 함)에 대하여 현재 소관위원회의 심사가 진행 중에 있어 그 핵심사항 및 기대효과를 아래에서 간략히 소개한다.
이번 특허법 개정안의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관련 핵심사항은 "법원이 아닌 장소에서 필요한 자를 대상으로" 사실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안 제128조의3), "침해의 증명 또는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법원이 자료보전을 명할 수 있도록(안 제128조의5) 하는 것의 두 가지이다. 현행 민사소송법에도 법원 밖에서의 증거조사를 허용하는 규정(법 제297조 및 제313조 등) 및 증거보전에 관한 규정(법 제8절 제375조부터 제384조까지)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일부 법조인들까지도, 이번 특허법 개정안의 정확한 의미와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 둘의 차이는 아래의 표에서와 같다.
| 구분 | 현행 민사소송법 | 이번 특허법 개정안 |
|---|---|---|
| 법원 밖에서의 증거조사 | 합의부원에게 명하거나 다른 지방법원 판사에게 촉탁하여 할 수 있음. 즉, 수명법관 또는 수탁판사에 의해서만 법원 밖에서의 증거조사 및 증인신문이 가능 | 법원서기관, 법원사무관, 법원주사 또는 법원주사보나 공증인,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신문 수행에 적합한 자가 법원 밖에서 녹음 또는 영상녹화한 진술인의 진술에 증거능력을 인정함 |
| 자료(증거) 보전 | 미리 증거조사를 하지 아니하면 그 증거를 사용하기 곤란할 사정이 있다고 인정한 때에 행하는 사전 조사의 성격. 즉, 증거조사를 소송과 분리하여 별도의 절차에서 미리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 침해의 증명 또는 침해로 인한 손해액의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점유·관리·보관하는 사람이 이를 훼손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하지 아니하도록 자료의 보전을 명하는 제도. 즉, "온전하게 보호하여 유지함"이라는 "보전"의 사전적 의미에 더 잘 부합하는 제도 |
이번 특허법 개정안은 어떠한 증거가 반드시 법관 앞에서 현출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그 조사가 가능한 범위를 널리 확대하고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요건도 크게 완화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침해의 증명 또는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가 대부분 침해자에게 편재하는 특허소송에서 종래의 제도보다 훨씬 용이한 절차와 방법으로 그 침해행위 현장에 나가 그곳에 있는 사실을 검증하고 그곳에 있는 자를 신문하여 그 결과를 증거로 삼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피해자의 입증곤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제도개선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민사소송법상의 증거보전절차를 포함하는 증거조사의 절차가 실제로 개시되기 이전에도 그 조사 대상 자료를 훼손하거나 사용불가능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자료의 현상 유지" 명령 제도를 명문화하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책자 형태의 기밀자료를 대량으로 몰래 파기하기 위하여 심야에 그 자료를 들고 인적이 없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여 소각하여야 하는 등, 불리한 증거의 은닉·인멸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디지털 데이터를 클릭 한번으로 삭제하고 소형 외장기록매체를 손쉽게 물리적으로 손상시켜 그 데이터의 복원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등 불리한 증거의 인멸 등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용이해졌다. 또한 현행 민사소송법은 증거조사 절차에서 "당사자"가 상대방의 사용을 방해할 목적으로 제출의무가 있는 문서를 훼손하거나 이를 사용할 수 없게 한 때에 법원이 "그 문서의 기재"에 대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인데(법 제350조)4), 이것만으로는 당사자 이외의 자의 증거인멸행위나 원고가 주장하는 손해액이 피고의 실제 매출액보다 현저히 낮은 경우에 피고가 매출액 자료를 고의로 훼손하는 등, 구체적으로 무엇이 기재되어 있는지를 상대방이 미리 알기는 어려운 자료의 인멸행위를 방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료를 현상 그대로 존재하도록 유지하게 하는 명령 제도를 명문화하고, 그 명령을 위반하는 모든 자를 자료보전명령위반죄로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안 제225조의2)은5) 피해자의 입증곤란 문제 해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도입에 관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었고, 이에 관한 법률 개정 역시 여러 번 시도되어 왔었다.6) 그러나 실제 법률 개정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였고, 그 원인 중 하나에는 새로운 제도를 구체화하는 법률안이 증거조사 등에 관하여 그 기간이나 대상 등을 한정하지 않는 등 과잉금지원칙에 반하고 제도 남용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법무부 검토의견이 있었다.7) 그런데 이번 특허법 개정안에서는 필요한 사항에 한하여 상대방 당사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진술인의 수, 범위, 방법 및 장소를 정하여 상호간에" 신문할 수 있도록 하는(안 제128조의3 제1항) 한편, 자료보전명령 역시 자료를 점유·관리·보관하는 자에게 사전 의견 진술권을 보장하고(안 제128조의5 제3항) "1년의 범위에서 기간을 정하여"만 자료보전을 명할 수 있도록(안 제128조의5 제1항) 하는 등 법무부의 기존 검토의견을 반영한 개정안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에, 특허법 개정 가능성이 이전 다른 법률안이 발의되었을 때와 비교할 때에 매우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특허법 개정안의 통과로 기술개발 투자 유인이 증대되어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또 한 번 대도약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나라 법률서비스의 시장이 크게 확대되고 그 품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1) 분쟁 시작부터 종결까지의 개략적 전개과정은 다음 링크의 자료를 참조하라.; https://me2.do/FENkjOjk, 최종접속 2024.12.11.
- 2) 양도웅 기자, "中 경쟁사 추격에 투자 시급한데, 1년 연구개발비가 소송비로 외국에"... SK-LG 특허분쟁비용만 0.5조원, 녹색경제신문 2019년 9월 15일 자 뉴스기사.; https://www.greened.kr/news/articleView.html?idxno=213186, 최종접속 2024.12.11.
- 3) 특허청에서 소개하고 있는 한국형 증거수집제도의 도입 추진 배경을 참조하라.; https://www.kipo.go.kr/ko/kpoContentView.do?menuCd=SCD0200118, 최종접속 2024.12.11.
- 4) 당사자 외의 자가 문제제출명령에 위반하여 같은 행위를 한 때에는 고작 과태로 처분 등을 받는 데에 그친다.; 민사소송법 제351조.
- 5) 형법상 증거은닉죄(법 제155조 제1항)의 형과 비교할 때에 징역의 상한은 조금 낮추고 벌금의 상한은 크게 높인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음.
- 6) 대표적 예로 지난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되었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된 의안번호 제2104191호 특허법 개정안 등이 있음.
- 7) 제382회국회(정기회) 제13차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특허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제2104191호) 검토보고서 참조.